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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부평서여중 3 최다형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을 처음 사서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을 창문 너머로 몰래 들여다보는 것 같아 당황되었다. 이 책에는 저마다 남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초라한 이야기들, 나름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편 담겨 있다.
자신들이 살던 고향 마을을 떠나 서울로 들어가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변두리 원미동에 터를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로 들어가기 어려운 것처렴 보였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의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그런 선함이 오히려 그들의 처지를 바꾸는데 도움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시대는 무엇보다 돈만 중요시하는 아주 천박한 사회였고, 그런 천박한 시대에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되돌아가고 싶어도 되돌아갈 고향이 없어 아쉽고, 아무리 노력해도 잡을 것보다는 잃어버릴 게 너무 많은 세상이라 구질구질한 모습이 바로 원미동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 흉터 투성이로 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작가는 따뜻한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지지리도 못난 삶을 살면서도,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각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저마다 그 무언가를 틀어쥐고 있었다. 그게 참 희안했다. 「마지막 땅」의 강노인은 절대 땅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땀흘려 일한 만큼 풍성함을 가져다 주는 땅을 지키려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찻집 여자」의 행복 사진관 엄씨는 자신의 예술혼을 돈으로 팔지 않았다.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에 등장하는 임씨는 ‘양심’을 끝끝내 놓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기에 슬프지만, 또 그 때문에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뒤쳐지지 않기 위해 우리들이 발버둥치면서 슬그머니 놓아버린 그 어떤 소중한 가치들을 작품의 주인공들은 보석처럼 간직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요즘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메말랐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다른 사람보다는 나, 바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이기심은 결국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타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는 사건사고들이 많이 들리고 있다. 그 모든 것은 남을 밟거나 헤치면서까지 나와 내 가족들만의 행복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빚어내는 일이다. 결국 그 상처와 불행은 나 자신에게 되돌아오며 모두를 망치는 일임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중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빈부 격차, 양극화 현상이다. 물론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또 시급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국가가 발벗고 나선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구체할 수도 없으며, 또 부자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모두 책임질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왜 그렇게 떠들어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걸까?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다. 그렇다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사는 편도 아니지만, 최근 내가 본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난하지 않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생각하곤 한다.
가난이란 단지 물질적인 부분에서의 부족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갈 충분한 여력이 없어 삶에 찌들어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거대한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다. 각자가 사는 동네가 원미동이든 부평동이든 혹은 해남읍이든 도곡리든 상관없이 같은 시대 어디선가 멀지 않은 곳에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 어느 곳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있으니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삶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까닭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나와는 별개의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위아래 층, 혹은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을 만나도 긴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 없다. 아예 그 사람이 누구인지 관심도 안 갖고 쳐다보지도 않거나 우연히 눈이 마주쳐도 외면하는 게 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원미동 사람들의 삶은 나에게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산업 사회에서 매말라버린 인정을 비판하고 아기자기한 관계의 중요성이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물질적 풍요와 바꿔버릴 만큼 소중한 것은 아니다. 필요충분조건,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하고 모자라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원미동 사람들에게는 돈이 없고, 우리들에게는 인정이 없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절대 버릴 수 없는 건 희망이다. 그래서 원미동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희망동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바람이다. 무엇이든 만족보다는 모자람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늘 행복하지 않겠지만, 희망이 꺼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불행이나 아픔도 어루만져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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