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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인간을 교화하다, [러브하우스]의 경우 / 이영재
이영재 yj_lee@cultizen.co.kr
1967년생, 한양대 사회학과 대학원 졸업, 컬티즌 편집장
[러브하우스]는 너무 야심적이다. 신동엽과 친구들은 작고 조용한 선행은 꺼린다. [러브하우스]는 매주 개보수의 엄청난 `기적`을 행하고 싶어 안달이고, `생색`을 간절히 희구하는 것이다.
거대 미디어들은 정보와 대중을 성의껏 매개하는 메신저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윤리성과 효율에 대한 세평은 모른 체하고 자꾸만 세상을 훈육하려 드는 것이다. 이른바 ‘캠페인’ 따위를 벌여 세상 사람들에게 지성과 인성과 애정을 심어주려는 오만을 드러냈던 것은 미디어들의 해묵은 습성이다. 정치한 태도를 갖기 원한다면 가르치려드는 매체의 오만에 침을 뱉기보다는 구체적인 비판 논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인데, 오늘 이야기할 것은 압도적인 성공을 구가 중인 `사랑과 감동의 전령` [러브 하우스]이다.
[러브 하우스]는 성공한 기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기 모순과 편견을 숨기고 있다. 신동엽과 친구들이 자부하는 사랑과 시혜는 과장된 트릭임이 명백한 것이다. 이 사실은 [러브 하우스] 측의 `간택` 기준을 따져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집수리 신청자들이 매주 500명을 넘는다고 하니 한 가족이 TV 속에서 행복감에 터질 듯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499 가족들은 외롭게 탄식하는 셈이 된다. 도대체 선택 기준이 무엇인가? 499 신청자는 왜 탈락했을까? 낙오한 가족들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무한히 따뜻한 미소의 [러브하우스]가 실은 냉철하고 사무적인 계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러브하우스]의 기적과 바퀴벌레
양진석, 남궁선, 김원철 등의 전문가들이 보수한 집을 공개하기 직전 [러브하우스]의 성우는 이런 식으로 멘트해 왔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그 방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쥐와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던 그 부엌이 도대체 어떻게 변했을까요? " "햇빛 한 점 들지 않고 습기로 눅눅하던 그 방이 어떻게 변신했을지 궁금하시죠."
바퀴벌레가 나오고 비가 새는 곳에서 자족하며 지내는 사람이 전국에 적어도 수 백만 명일 것인데, `하층`의 멀쩡한 거주 공간을 비정상으로 매도하고 폄하하고 헐뜯는 태도는 중산층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태도에는 [러브하우스]의 감동 조작 트릭도 숨어 있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보수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큰 차이가 없다면 어떨까? 신동엽은 민망하고 구경꾼들은 실망할 것이다. [러브하우스]의 선택 기준 하나가 분명해진다. 인테리어와 개보수의 효과가 극적일 수 있는 집을 원하는 것이다.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그럭저럭 겉모양이 괜찮다 싶은 집은 당첨되지 않는다. 가능한 바퀴벌레가 많이 살고 햇볕은 전혀 들지 않으며 빗물이 새야 행운을 안을 수 있다. 집이 선택된 후 카메라는 더럽고 비참한 구석을 찾아 집중적으로 비추고 신동엽은 가족들이 불편과 비위생과 위험을 감수하며 살았던 가련한 존재였음을 고백하도록 거듭 거듭 독려한다. 하층의 공간과 거주 양식을 악의적으로 헐뜯어야 감동도 커지고 시청자들의 호응도 높아지고 자신의 평판도 좋아지는 기괴한 숙명을 [러브하우스]는 타고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러브하우스]는 너무 야심적이다. 신동엽과 친구들은 작고 조용한 선행은 꺼린다. [러브하우스]는 매주 개보수의 엄청난 `기적`을 행하고 싶어 안달이고, `생색`을 간절히 희구하는 것이다.
진짜로 가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극도로 가난해야 [러브하우스]의 선택을 받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러브하우스]의 입장은 어정쩡하다. 집을 고쳐줘야 하니 세를 얻어 사는 사람들은 불리하다. 집주인과 협상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 예를 들어 비닐 하우스를 개조해서 살아가는 극빈자도 [러브하우스]의 고려 대상이 되기 어렵다. 경제적 하층에게 희망을 준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신동엽과 친구들은 재산 하나 없는 자들을 구원할 수는 없는 자가당착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소외된 이웃도 버림받는다
[러브하우스]는 소외된 이웃을 보살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역시 어정쩡하다. 심각하게 소외된 이웃으로는 거동도 어려운 80세 독거 노인을 상상할 수 있다. 또 평생 장가들지 못하고 홀로 사는 외로움에 찌든 중늙은이 아저씨들도 우리 사회에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집수리를 신청해봐야 선정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러브하우스]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대체로 대가족이다. 3대를 이루거나 자식이 여럿이거나 혈연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가능한 집단으로 모여 살아야 한다. 독거 노인에 비하면 그들은 비빌 언덕이 있어 덜 소외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러브하우스]가 주로 대가족을 선정하는 것은, 집을 개보수했을 때 감동받고 혜택받는 사람들의 수가 많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새 집 앞에서 터져 나오는 행복한 표정과 반응이 다양해서 그 중 멋진 것을 골라 편집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같은 이유에서 개보수가 끝나기 전까지 해당 가족들은 공사 진척 상황을 보지 못하도록 [러브하우스]는 조치한다). 그러니 홀로 연명하는 노인들은 집에 바퀴벌레가 득실대고 대들보가 기울고 아무리 소외감에 시달린다고 해도, [러브하우스]의 심사에서 낙방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감동과 재미에 대한 [러브하우스]의 집착은 스스로 천명하는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면서 버스와 지하철에서 농성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또 최근 어떤 장애인은 월 30여만원의 보조금을 정부에 되돌려 주면서 정부의 복지 정책을 힐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정당한 주장이고 가슴 아픈 사연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곳에서 4대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아도 신동엽이 찾아오지 않는다. 대신 하등 경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 [PD 수첩]등이 달려올 뿐이다.
[러브하우스]는 밝고 묵묵히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소외된 이웃을 원한다. 장애인이건 노인이건 소년 가장이건 세상에 감사해야 한다. 복지 정책과 가난한 계층의 권리와 행복할 권리 등을 소리 높여 주장해서는 안 된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연신 벙긋거리며 오직 자신에게만 채찍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러브하우스]는 태생부터 그렇게 보수적이며, 과장하자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조 정신이나 DJ 정부의 `생산적 복지` 쯤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러브 하우스]의 재미와 감동은 엄격하고 사무적인 원칙에 따라 연출된 적어도 반쯤은 픽션인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돕는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선언하는 정체성과 실제 행보가 크게 어긋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섬뜩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편견도 내보인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의 상찬이 왠지 거북했거나, 버림받은 자들에게는 희망을 시청자에게는 사랑의 정신을 일깨운다고 자부하는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치밀었다고 해도 심성이 비뚤어져서 아니라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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